㈜미라위즈 송경모 대표·피터 드러커 연구가, 조선일보에서 scrap
컴퓨터가 잘 하는 것
①복잡 절차 간소화 ②신속한 정보 전달 ③내부 정보의 분석
경영자가 잘 해야 할 일
①중요한 의사 결정 ②내·외부
의사소통 ③외부 정보의 활용
알두스 마누티우스(Aldus Manutiu·1449~1515)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에 첨단 기술이었던 활판 인쇄술을 응용해 과거에 필사본으로만
돌던 그리스 고전을 대량 출판함으로써 거부가 된 인물이다.
구텐베르크를 튜링이나 폰 노이만에 비유한다면, 마누티우스는 빌 게이츠
정도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흔히 알려진 이탤릭체, 그리고
세미콜론이나 콤마를 처음 사용한 사람도 바로 그다.
그가 인쇄와 출판 산업을 정착시킨 이후 인쇄 기술은 점점 보편적인 지식이 되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개량이 거듭되어 왔지만, 오늘날 인쇄 기술을 첨단
기술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드러커는 과거 문자와 서적의 발명에 이어, 구텐베르크 이후의 인쇄
혁명을 3차 정보 혁명, 20세기 후반의 컴퓨터와 인터넷
혁명을 4차 정보 혁명이라고 보았다. 이 4차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컴퓨터 기술자들은
본질적으로 500년 전 인쇄 기술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시로 거액을 들여 IT 시스템에 투자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정보통신기술 강국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잘 구축된 IT 환경에
많은 기업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럼에도 IT 시스템
때문에 기업의 성과가 크게 개선됐다는 이야기는 잘 들어보지 못했다. 왜일까?
드러커에 의하면, 그 이유는 현재의
ICT(정보통신기술) 시스템이 경영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아직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아직 대체할 수 없는 경영자 본연의 과업은 의사 결정(decision-making),
의사소통(com munication), 외부 정보(outside
in formation)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나타난다.
첫째, 컴퓨터는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뿐,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컴퓨터는 기존의
잡다한 관리 업무와 지루한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컴퓨터가 아무리 복잡한
업무를 잘 처리하더라도 정해진 조건들에 따른 일련의 흐름일 뿐 결코 의사 결정은 아니다. 경영자는 관행과
어긋나는 상황에 수시로 직면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컴퓨터는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다.
둘째, 경영자가 내부 인력이나 외부의 시장을 상대로 하는 의사소통은 IT 시스템이 해줄 수 없다. 왜냐하면 정보는 비트(bit)와 알고리즘(algorism)이지만, 의사소통은 지각(perception)이자 전체 상(configuration)이기 때문이다. IT 시스템은 통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필요한 소통은 사람만 할 수 있다. 어느
사업부가 연 매출 10억원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정보이지만,
"겨우 그것밖에 못 했느냐" 또는
"대단한 일을 해냈구나"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소통의 문제다. 소통이 사라지는 순간 조직은 시체가 된다.
셋째, 경영자의 큰 의사 결정은 항상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나온다. 인터넷 정보 검색이 대중화되기 전에도 미국의 종합 유통업체 시어스로벅의 전설적인 CEO 우드는 침대 머리맡의 미국통계연감에서 인구의 변화와 이동 추세를 늘 연구하면서 새로운 고객을 발견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정보가 넘쳐나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조차, 기업가들은 외부에서 서브프라임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오늘날 첨단 MIS(경영정보시스템)나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는 주로 내부의 정보를 다루며, 경영자에게 정작 필요한 외부 정보는 찾기 힘들다. 특히 기존 고객이
아닌 비고객(non-customer)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비고객을
고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야말로 경영자의 큰 역할임에도 말이다.
IT 붐이 한창이던 1998년에
드러커는 포브스(Forbes)지에서 말했다. "컴퓨터는
경영자가 내부의 비용에 치중하는 나쁜 습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10~15년 사이에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정보기술의 다음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2005년에 드러커가 타계하고, 최근에
빅데이터(big data)가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외부 정보를 분석하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빅데이터가 경영자에게 의미 있는 외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상당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현재 ICT는 아직 T(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정작 I(정보)는 걸음마 단계이고, C(소통)는
요원할 뿐이다. 과거 인쇄 기술이 처음 등장한 뒤 서적의 지식이 기업 경영에 응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ICT가 경영자의 일을 상당 부분 대신해 주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컴퓨터가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를 품기보다는,
경영자 본연의 일을 자각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